관람 안내
전시기간│2024년 10월 25일 – 12월 21일
참여작가│강민서, 김규리, 김동우, 배한솔, 송지유, 전지홍, 최희수, 홍수진
주 최│하이트문화재단
관 람 료│무료
관람시간│화요일-토요일, 12 - 6pm (*공휴일 및 매 월요일 - 화요일 휴관)
하이트컬렉션
(06075) 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714 하이트진로빌딩 B1, 2F
주최│하이트문화재단
나는 너를 보고 있는 하늘의 눈이다
이성휘
하이트컬렉션은 2024년 젊은작가전으로 《나는 너를 보고 있는 하늘의 눈이다》를 개최한다.1 참여작가 강민서, 김규리, 김동우, 배한솔, 송지유, 전지홍, 최희수, 홍수진은 모두 1990년대 초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들이며, 전시는 여덟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서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들이 세계를 어떻게 사유하고, 욕망하고, 또 어떻게 세계로부터 침잠하는지 그 일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작가들이 속하는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는 젠지(Gen.Z), 주머(zoomer), i세대 등으로도 불리는데, 이들은 인터넷이 없는 세상을 전혀 모르는 최초의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로서, 유년기부터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자유롭게 접하며, 온/ 오프라인을 구분하지 않고 넘나들면서 정보와의 무한한 연결 가능성을 경험하며 성장했다.2 밈, 유튜브, 틱톡 영상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손쉽게 다룰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과거 어느 세대보다 많은 발언권을 가진 듯하나, 현실세계에서는 자신들의 힘이 위축되었다고 느낀다. 또 윗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여러 가지 당면 문제들, 이를테면 기후위기, 전쟁과 폭력, 인종차별, 젠더 불평등, 정치체제의 실패, 부동산 소유나 부의 축적 가능성이 희박해진 현실 같은 문제들에 비관적이다.3 그러나 세계에 대한 상당한 비애감 속에서도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들은 세계와 자신들의 관계를 정립하는 방법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모색해 나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들이 세계에 대한 주도권을 탈환하는 과정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이번 전시는 여덟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서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들이 세계를 향해 투사하는 비판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시선과 그 출발점이 되는 이들만의 내밀한 사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여덟 명의 작가들은 개인적인 차이가 있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해석하는 방식 등에서 서로 중첩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강민서와 김동우는 각각 현실과 허구, 가상과 실재가 모호하게 혼재된, 그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서사의 발전 가능성과 생명이나 인간 존재의 형태를 탐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강민서가 신화적 존재를 그의 공상이나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서사를 갖는 이미지로 재창조한다면, 김동우는 가상-현실의 관계에 천착하면서 이 경계에서 인간의 존재론적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에 몰두한다. 김규리와 전지홍의 작업은 시공간에 대한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다층적이면서도 비선형적인 서사로 구성한다. 이들에게 세계의 의미는 과거와 현재가 공간상에서 혼재하면서 구성되는 것이다. 배한솔과 홍수진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진보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만연한 동시대 현실에 탑재되어 있는 불확실성과 정보 왜곡, 믿음과 신념의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진실과 허구에 대한 믿음이나 사회적 구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다양한 리소스를 활용한 영상 작업을 통해서 시도한다. 송지유와 최희수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을 이미지로 포착해내려는 시도를 한다. 이들의 호기심은 개인적 차원에서 시작되고 발전되지만, 젠더, 정치, 사회, 역사의 여러 문제들과 겹쳐지는 것들이기도 하다.
작가들의 작업을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강민서(b.2001)는 신화의 내러티브에 등장하는 모티프들에서 회화적 대상을 찾는다. 그의 그림에는 인어, 거인, 천사, 사티로스 등 다양한 신화적 존재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견고한 신화적 존재들의 이야기에 과감히 틈입하고자, 살을 가르고 손가락을 집어 넣어 틈을 벌리는 행위를 회화 화면 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내곤 한다. 이러한 모티브는 아담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이브나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토마>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작가는 이를 신화적 존재들이 담지하고 있는 이야기의 시작이자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개별적인 생명체들에 집중하려는 시도로 설명한다. 그의 회화에는 눈과 귀, 그리고 입의 형상이 빈번하게 등장하며, 이들은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구멍이자 틈의 모티프로, 또 손가락과 발가락은 틈입의 행위이자 시각으로부터 확장된 촉지적 감각을 대변한다. 한편, 작가는 이탈리아 및 북유럽 르네상스 회화 양식에 관심을 갖고 이 회화들의 세밀한 표현 기법을 관찰하여 자신의 작업에 투사하기도 한다. 뒤러의 동판화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다양한 프레스코화나 템페라화와 같은 건식 회화들로부터 다채로운 영감을 받곤 한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의 군집에서 아무런 연관 없는 특정한 몇 개가 선택되어 이야기를 갖게 된다. 이야기와 신화는 애초에 설득력을 잃어버렸지만, 무엇이든 가능하기에 허구가 아니었던가? 반대로 선택만 받으면 무엇이든 사실이 되어온 현실의 층도 있다. 그러니 나는 어떠한 것이 그래야만 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다시 만들고 싶지 않다. 가령 사티로스의 두개골은 큰 귀의 바로 옆에 안구의 구멍이 있고, 물속에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인어는 여느 물고기처럼 옆만 볼 수 있는 눈알로 귓구멍을 막아버렸듯이. 나는 나름의 논리를 부여하여 소멸과 망각의 겁에 질릴 일이 없던 것들을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놓는다. 여전히 모르는 것을 숨기기 위해 전체를 다 보여주지 않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 정말 존재했던 것처럼 만들어내어 발견된 작고 오래된 징표를 들이밀 용기를 얻고자 한다….”
– 강민서의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2024)에서 발췌
김규리(b.1999)는 회화가 캔버스 평면 하나로 압축되는 결과에 의문을 가지고, 회화에 켜켜이 쌓여 있는 시공간을 부분적으로 선택하여 다시 확장하거나, 회화의 내러티브를 여러 장의 페이지를 갖는 책의 형태로 자세하게 풀어 펼쳐 이미지의 행간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의 <드로잉 아카이빙> 시리즈(2022)는 총 7권 분량의 드로잉북 작업인데, 작업 당시 작가는 한주에 한 권씩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하여 7주 간 진행했다. 작가는 일부러 얇은 종이를 선택해 드로잉이 서로 비치게 했는데, 특히 앞선 드로잉이 다음 드로잉에 물리적으로나 의식적으로 반영되는 것을 의도하였다. 동시에 작가는 드로잉 작업 중 생긴 질문이나 생각의 편린들을 수집하여 일련의 픽션처럼 기록하였다. 그 내용은 회화나 미술에 대한 독백, 대화가 주를 이루는데, 일례로 추상적인 선을 이해하는 과정에 어떤 인식 체계가 숨어 있는지, 그림의 완성 기준은 무엇인지, 그림이 외부 세계를 반영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 등이다. 또 작가와 그의 주변인들이 소설의 인물들처럼 등장하여 작업물에 대한 어떤 심적 동기나 스트레스 요인으로 암시되기도 한다. 김규리의 회화 작업 역시 단편적인 캔버스 작업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으로 진행되곤 한다. 최근 작가는 경험을 촉발하는 이미지들을 수집해 캔버스 위에 배치한 회화를 그린 후, 이 그림 속 조형요소를 읽어가며 연속된 낱장의 회화들을 다시 그렸고, 이후 낱장의 조형들을 함축하여 새로운 장면을 담은 회화로 진행한 바 있다. 그가 해체와 함축이라는 단계를 거치면서 회화를 진행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한 점의 캔버스로 완성되곤 하는 회화는 쌓여 있는 물감층이 지시하는 것처럼 겹겹의 시공간이 함축되어 있기 마련인데, 작가는 그림 속에 갇혀 있는 시공간을 낱낱의 화면으로 펼쳐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형식을 이루는 물감의 색, 제스처, 시선의 움직임까지 포함된다. 그리고 마치 하나의 회화를 통해 플래시백 효과를 경험하는 것처럼 겹겹의 이미지들이 펼쳐져 있는 시공간으로 나아가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동물원과 향수병 2>(2024)는 김규리가 서울숲의 사슴 동물원을 수차례 방문하여 관찰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행위에서 출발하였다. 그는 촬영한 사진을 담배곽을 펼친 종이 내지에 시아노타입으로 인화하였고, 이 사진들을 기반으로 질감이 다른 두 점의 캔버스에 그림도 그렸다. 그는 동물원 울타리를 프린트 작업과 회화 작업에서 그리드로 응용하는데, 이 그리드는 울타리 안에 있는 사슴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반복적인 관찰의 결과를 회화 화면에 혼재시키는 데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의 관찰은 장소나 사슴에 대한 재현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응시의 문제, 억압과 구속의 문제, 관념과 추상화의 문제, 또 엉켜 있는 시공간에 대한 복합적인 인지까지 뒤섞여 있다고 할 것이다. 또 다른 유화 작업인 <오토의 초상>(2024)은 영화 <희생>에서 비합리적 사건들의 증거물을 모으는 영매로 등장하는 인물 ‘오토’를 모티브로 하여 그린 초상이다. 그는 <희생>의 ‘오토’ 뿐만 아니라, 작가 루시안 프로이드가 젊은 시절 박제된 사슴 옆에서 찍은 초상 사진을 결합하여 그림을 구성하였다. 이 작업들에서 짐작되는바, 현재 김규리는 실제와 허구의 경계, 감시와 자유,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중이다.
김동우(b.1997)는 어린 시절부터 온라인 게임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밍 세계를 접하며 가상에 대한 관심을 유지해 왔다. 특히 가상의 토대나 조건, 환경과 같이 가상에 대한 총체적인 존재론에 관심을 가지며, 궁극적으로는 가상을 인간의 어떤 조건으로서 바라본다. 그에게 가상은 애니메이션이나 픽션으로 접하는 세계, 디지털 공간, 버추얼 휴먼의 영역 뿐만 아니라 기억이나 추억과 같은 인간적 영역까지 포괄적이다. 성장 과정에서부터 개인적 경험과 추억이 디지털 시공간과 불가분의 관계였던 작가에게 가상이라는 개념은 현실과 혼재하는 개념이 된 것이다. 이번 전시에 김동우가 출품하는 작품들은 아이소핑크를 주재료로 사용한 일련의 조각들이다. 작가는 평판 형태의 아이소핑크를 적층하여 두께감으로 만들고 기념비적으로 제시하곤 하는데, 이 표면을 덮은 인터넷 밈이나 짤 이미지들은 디지털 이미지의 팽창과 부피감을 역설적으로 실험하는 시도다. 또한 이 조각들은 폐허의 시공간에서 납작하게 기호화된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며, 작가가 냉소적인 태도로 의인화의 욕구를 체온 없는 사물에 투영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베이비부머에 해당하는 부모 세대와 달리 실패나 패배감을 기본 장착했다고도 일컬어지는 두머(Doomer) 세대의 감각이나 이들이 외부세계에 비춰지는 모습들을 추적한다. 일례로 두머의 주류 감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망했다’라는 극단적인 감상, 그리고 생각보다 멀쩡하게 흘러가는 듯한 오늘의 모습도 그의 주된 관심사다. 또 케이팝이나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중문화의 다양한 요소들을 차용하거나, 고대 신화, 역사적 사건, 영화, 문학 작품 등 다양한 문헌과 문화적 유산들을 참조하여, 오늘날의 개인과 세계의 관계를 조망할 수 있는 여러 층위의 서사를 구성하고자 한다. 출품작 중에서 <메두사를 마주친 핑크 갈라테아(Pink Galatea Confronting Medusa)>(2023)는 작가에 의하면 테러당한 기념비에 납작하게 기호화시킨 인간을 무심하게 뿌리는 행위다. 그는 이 조각을 ‘갈라테아’라고 칭함으로써 인간으로 호명하고자 하였다. 표면에 부착된 qr 코드로 접속하면 작가의 글을 읽을 수 있다. 한편, 고대 석관처럼 제시된 <룩백(Look Back)>(2024)의 한 면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눈이 그려져 있다. 눈의 반대편(작가에 의하면 조각의 등에 해당)에는 탈성장에 대한 다이어그램이 음각 새김되어 있는데, 오늘날의 세계를 계량하고 논리화하는 척도와 수단이 되는 다양한 용어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모든 일이 당연하다는 듯이(As if All of These are Obvious)>(2024)는 아이소핑크를 석고붕대로 감싼 후 겉면에 과거부터 이 세상에 존재했던 전쟁의 이름들을 새긴 작업이다. 작가는 이 작업을 다쳐서 기대어 있는 조각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전시장 귀퉁이에 마치 패잔병의 모습처럼 제시하였다. <결속은 나의 무기無機(Are There Any Friends?)>(2024)는 포토 부스의 형태를 띤 설치 작업으로, 정면 상부에는 ‘도전 골든벨’로 유명해진 “친구들아 미안해ㅠㅠ”라는 문구가 음각되어 있다. 작가는 이 작업에 대해서 정답을 적는 것을 포기하는 조각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낡고 빈티지한 기념비로 제시함으로써 비애감과 함께 멜랑콜리를 투사한다. 동시에 오늘날 기억을 기념하는 하나의 문화 장치인 포토 부스의 형태를 띰으로써 기억에 대한 기념비를 은유하고자 한다.
배한솔(b.1993)은 우리 사회에서 직면하는 여러 사건과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둘러싼 정보와 이미지를 수집하여 영상과 설치 작업으로 풀어낸다. 수집된 자료와 정보, 이미지들은 언뜻 과학적, 이성적, 객관적인 것 같지만, 작가는 이들 자료가 사실은 부정확하거나 오독되기 쉬운 것들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이들을 기존의 소비 방식으로부터 탈피하여 도래할 미래의 징후로 바라보고자 한다. 그에 의하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 특히 가시화되기 어려운 현상들은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집단적인 정서나 신념에 의해 모호한 데이터 혹은 오독되기 쉬운 이미지를 만들곤 한다. 이번 전시에 배한솔은 대한민국 현대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두 편의 영상 작품,
송지유(b.1996)의 작업은 매 순간 작가의 의식과 몸을 감싸는 수많은 감각과 감정에 대한 사색의 단상, 그리고 이들을 언어화한 단어와 문장들에서 출발한다. 이 언어들은 작가의 손에 의해 물질과 만나면서 그림이 되기도 하고, 오브제가 되기도 하고, 하나의 상황이 되기도 하면서 감각에 대한 사색의 경로를 순환한다. 예컨대, 작가가 감을 먹다가 그린 그림은 감에 대한 감각에서 출발하여 그림이 되고, 작가의 신체 일부인 속눈썹과 손가락의 감각으로 이어져, 마침내 PALM이라는 단어로 이어지는 ‘몽상의 경로’를 겪는다. 그는 종이, 밀랍, PLA 필라멘트, 나무, 철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입체를 만들기도 하고, 수채나 유화 물감으로 투명과 불투명을 오가는 성긴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때로는 시와 같은 텍스트를 그림으로 제시한다.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들은 작가가 복기하곤 하는 감각들을 표현하기 용이한 재료로써, 일례로 PLA 필라멘트는 유약하면서도 내구성 있는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재료이며 온도(열)에도 민감하다. 성분에 따라 동물의 뼈나 피부의 감각을 닮기도 하였다. 또 나무(피나무)는 단번에 형상이 나오지 않는 재료로써, 작가는 조각도를 가지고 나뭇결을 따라 조금씩 깎아내면서 형상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는다. 작가에 의하면, 보고 싶은 형상의 얼개를 머릿속에 그리고 손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그 형상이 어렴풋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나무를 다듬어 가는 긴 시간 동안 형상은 변하고 왜곡되기 마련이지만, 도리어 그 흐름을 이끌어주는 나무에 의해 작가는 은근한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송지유는 최근 이사한 작업실의 바닥을 전시장으로 옮겨 왔다. 그는 벽보다는 바닥에서 소위 널부러진 자세로 그림을 그릴 때가 많은데, 이사한 작업실의 장판을 새하얗게 칠하게 되면서부터 그 자체를 작업을 일부로 보고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작업들이 연결되는 지점이나 복기하는 감각, 감정, 욕망을, ‘연결감’과 ‘편애’라는 키워드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 키워드에 대한 작가의 리서치 노트에는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어린 시절 사진에 대한 인터뷰, 신석기 시대의 여신 숭배 및 모계 중심 사회가 드러내는 여성성, 그리고 19세기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생애에 대한 작가의 리뷰가 기록되어 있었다. 송지유는 이러한 리서치를 개인적 감정이나 욕망을 집단 무의식이나 인류의 심층적 마음에 견주어 보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작가에 의하면 그가 관심 갖는 것들은 ‘비이성적인’ 것들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고 ‘변화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에 대한 작가의 공상이 아주 오래된 것들과 만날 때 작업이 출발하게 된다.
전지홍(b.1995)은 개인적인 삶의 과정이 있었던 지역이나 장소, 공간들에 대해서 이 장소들이 역사적 사실이나 객관적인 정보로서 표명되는 것 위에 개인의 기억과 감각을 더 써 내려가면서 장소를 재의미화하는 방식으로 서사화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마산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작가는 삶의 과정에서 경험한 가족의 해체, 만남, 이별, 적응과 부적응의 시간을 겪었고 그의 초기 작업은 이를 장소에 대한 개인적 서사로 풀어내곤 하였다. 이후 작가는 사투리라고 하는 자신의 억양으로부터 시작한 개인의 발자취를 회화로써 유람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도시를 걸으며 거시적인 시선으로 도시의 지형과 계절을 바라보거나 역사를 사유하기도 하고, 반대로 대도시 속에서 개인의 서사를 발견하는 미시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도 하였다. 작가는 자신이 걷기를 통해 마주한 것들을 땅그림이라고 하는 옛 지도가 그려진 방식을 응용하여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림으로 기록한다. 통상 지도는 장소를 객관화하여 만인이 소통, 공유하고자 하는 수단이지만, 전지홍이 그리는 지도는 개인의 역사를 투영하여 장소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시각적으로 재배열하고 기념하는 공간이다. 한편, 동양화를 전공한 전지홍에게 종이는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재료인데, 이번 전시 출품작들은 모두 그가 손수 만든 종이 위에 작업하였다. 작가가 한지 위에 글과 그림으로 구성한 일련의 작업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종이를 향해 걸어 온 여정을 기록한 것이다. 전지홍은 자신이 사용해 오던 한지를 어느 순간 더 이상 구할 수 없게 되자 궁금증을 안고 전통 방식으로 종이를 만드는 장인들을 찾아가게 되었다. 이 한지 장인들을 만나면서 작가는 자연스레 종이 만드는 생활도 병행하게 되었다. 종이를 만들며 마음을 고르고 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배우게 된 작가는 언젠가는 종이와 잘 안녕하는 태도 또한 배우는 중이다. 전지홍의 종이를 향한 여정과 기록은 사적 경험에 의한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종이가 아니더라도 바쁜 삶을 핑계로 소중한 대상들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놓치고 살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만드는 서사는 현대인의 보편적 서사의 단면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완주에서의 시간은 종이 만드는 마음을 가까이서 읽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한지의 부재로 여정을 나설 때 많은 분이 한지가 줄어드는 이유는 ‘종이 만드는 사람의 노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직접 장인 선생님들 옆에서 듣고 보고 배우니, 몸의 쇠퇴로 인한 어려움이라 지금의 모습을 납작히 말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종이는 직접 ‘나의 몸’을 써 만들어요. 수조의 크기, 틀의 길이, 물의 높이도 모두 ‘내가 편한 상태’로 종이 제작의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한지는 내 몸이 가장 편할 때 만드는 종이라고 해요. 나의 몸과 마음이 편안할 때, 기분 좋게 만들어지는 종이는 참 아름답습니다. 종이를 만드는 분은 자신이 손으로 만든 좋은 종이 한 장을 많은 분이 필요로 하고 기쁨으로 사용하는 것을 가장 자부한다고 말씀하세요. 한지장은 시간의 흐름에 변화하는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무리하지 않고 지금의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좋은 종이’를 조금씩 만들고 계셨어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언젠가는 그만 내려놓아야 함을 아시는 모습 또한 참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안녕하는 것. 종이 곁에 머물다 잘 보내주고 또 잘 맞이하는 태도를 배워요. 여정을 나설 땐 ‘왜 더 이상 내 종이(순지)를 만날 수 없는 걸까’란 아쉬운 마음만이 가득했다면, 요즘은 지금까지 사용한 종이를 만들어주신 여러 한지장님께 감사한 마음, 동시에 새롭게 만나는 종이를 살피는 즐거운 마음이 찰랑거립니다. 더 이상 붙잡기보다는 다음 종이의 길을 향해 또 걸음을 뗍니다. 제가 대승한지마을에서 머물렀던 집 이름이 ‘줄방’인데요, 예부터 종이 만드는 사람들이 머무는 방이었다고 해요. 오랜 시간 불 꺼져 있던 줄방에 이제는 제가 꾸준히 와 환히 밝혀두려 합니다.”
-전지홍의 「작가노트」(2024)에서 발췌
최희수(b.1998)의 사진 및 조각 작업은 한 쌍의 서로 닮은 사물들이 공유하는 형태와 이미지의 관계를 탐구한다. 지난 몇 년간 작가의 주된 관심사는 관계, 특히 애착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작가는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감정을 교류할 수 없는 물건들에도 누군가에게 소속되거나 소유되어 시간을 보내면 그의 물건으로 인지되게 됨으로써 애착 관계가 시각적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의 사물의 초상 작업은 커플들의 물건 중에서 똑같이 생겼지만 완전히 똑같다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피사체로 선택하였다. “끈끈히 달라붙어 서로에게만 열려 있는 로맨틱하고 섹슈얼한 세계”4를 담아낸 사진들을 통해서 최희수는 물건 소유자들의 관계, 사물과의 연결감, 그 내밀함에 대해서 사색을 유도한다. 사물의 초상 작업은 카메라의 시선이 갖는 젠더적 편향성에 대해 고민하던 작가에게 관계를 파고드는 섬세한 시선을 열어 주었다. 이번 전시에서 최희수는 궤적이나 흔적이 내포한 움직임에 대한 작가의 수행을 담은 사진 시리즈와 조각 작업을 선보인다. 먼저
“나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 자리에 있다고 믿는 것에서 출발한다. 궤적, 흔적 등 움직임을 내포한 다양한 형태를 통해 보임과 보이지 않음을 탐구하면서 그 격차를 뒤집음으로 새로운 존재 양식을 제시한다. 현재는 일정한 스코어를 부여하여 만들어진 두 개의 닮은 조각을 만들어내는데 관심을 가지고 정지된 조각에 내재된 역동성을 끌어내고자 한다.”
-최희수의 포트폴리오(2024)에서 발췌
홍수진(b.1997)의 영상은 오늘날 우리가 군사 산업, 원격 전쟁, 수량화와 개념화와 같은 문제들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일상에서 터부시하고 배제하려고 하지만, 현대인 모두는 이 거대한 체계와 문제들의 일부이기도 하고 이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이득을 얻으며 살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오늘날 종교적 믿음에서부터 세속적인 믿음까지 거리낌 없이 믿음을 내세울 수 있는 현대인들의 믿음의 유래와 속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시공간을 관통하여 작동하는 믿음의 정신병리학적인 속성과 그 보편성을 추적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
한편, 이 전시의 작품들에는 ‘눈’ 이미지나 ‘눈’이 상징하는 힘을 의미하는 모티프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강민서나 김동우는 직접적으로 눈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으며, 김규리, 전지홍의 작업에는 각각 주체의 시선에 대한 고민과 해법이 담겨 있다. 송지유, 최희수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갖고 세계에 대한 내밀한 감각을 시각화한다. 이들은 세계를 향한 우리의 감각과 경험이 시각적인 것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배한솔과 홍수진의 영상은 전지적 시점의 권력과 시스템이 세계를 어떻게 왜곡하고 기만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어떤 측면에서 이번 전시는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가 직면한 세계에 대한 불안과 혼란, 그리고 그 속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거나, 아니면 세계로부터 침잠해버리는 태도를 반영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은 디지털 세계에서 무한한 연결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이를 통해 획득한 권한과 발언권이 직접적으로 세계를 움직일 수 있게 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도와 좌절이 필연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가 당면한 문제들과 비애감은 윗세대로부터 출발하였고, 우리 모두 동시대적으로 경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쪽의 과제로만 치부할 수 없다. 우리는 작금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보이지 않게 흐르는 자본이 우리의 삶과 예술을 어떤 지경으로 변화시키는지, 또 이미지와 데이터가 순환하고 확산되는 과정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 지켜봐야 하며,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미디어에 잠식되지 않는 미학적 실천과 상상력은 무엇인지 시지프스처럼 거듭 실패하고 노력해야 한다.
전시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