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 안내
전시기간│2023년 7월 7일 – 2023년 9월 17일
참여작가│강석호, 김경태, 김수영, 김용관, 이해민선, 정경빈, 정희승, 한우리
주 최│하이트문화재단
후 원│하이트진로주식회사
관 람 료│무료
관람시간│수요일-일요일, 12 - 6pm (*매 월요일 - 화요일 휴관)
하이트컬렉션
(06075) 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714
하이트컬렉션에서는 2023년 7월 7일부터 9월 17일까지 기획전 《이미지들》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언어가 도달하지 못한 이미지에 대한 전시다. 언어는 종종 이미지의 밀도를 채우지 못하거나 이미지의 공허만큼 비워내지 못한다. 이미지에 비해 한없이 불완전한 언어가 이 전시를 추동시킨 힘이다.
이 전시에는 회화, 사진, 영상을 다루는 여덟 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대표적인 시각 매체가 골고루 섞인 전시이지만, 매체성 담론보다는 출품작들이 모두 개별적이자 인간적인 의지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미지들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작가들은 자신이 다루는 매체의 속성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고, 시간과 기억에 대한 경험이나 사유를 이미지로 접근하는 방식이 구분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예술로서 이미지는 작가의 인간적인 의지에 의해서 표명된다는 점은 동일하다. 따라서 이미지는 상당히 개별적인 사건으로 발생한다. 이미지는 기억이나 꿈, 상상 그 자체일 수도 있으며 시각적으로 표현되었을 때 그 표현 수단이나 방식(매체, 질료 등)을 통해서 물리적 형체를 지닌다. 이미지는 인간이 시공간에 대한 감각과 경험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자 물질적 수단이다. 그리고 회화, 사진, 영상은 그 방법의 일부인 것이다.
이 전시는 (재)하이트문화재단이 주최하고 ㈜하이트진로가 후원한다.
작가 및 작품 소개
■ 강석호
강석호(1971-2021)는 일상에서 오랫동안 본 것들을 직접 찍은 사진이나 인터넷, 기사 사진 등을 참조하여 회화 작업으로 옮겨온 작가다. 의복 시리즈, 제스처 시리즈 등 강석호의 유명한 작업 시리즈들이 있지만 이번 전시는 루빅 큐브 시리즈를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이 시리즈는 강석호가 사진을 거의 참조하지 않고 그린 작업들이면서 단순한 정물화로 단정 짓기에는 회화와 시공간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강석호는 조르조 모란디의 정물 그림을 좋아했다고 하지만 전해지는 정물화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화병을 그린 적도 있으며 루빅 큐브 역시 강석호의 정물화 연구의 주요 대상이었다. 그는 여러 개의 큐브를 공간에 펼쳐 놓고 큐브의 색면, 큐브들 간의 관계, 공간과의 관계에 대해서 파고들었다. 이는 시공간에 대한 몰두로 이어져 우주 공간 상에서 천체의 공전 운동으로 연동되기도 하였다. 흔히 정물화는 정지된 화면으로 인식되고는 하지만 강석호는 이와 반대로 무한한 시간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듯하다.
■ 김경태
김경태(1983-)는 피사체의 크기나 거리에 따라서 인간의 눈과 카메라 렌즈가 현실감각을 초월하는 이미지를 포착, 경험하게 되는 것에 꾸준히 주목해 온 작가이다. 극도로 작은 사물을 거대한 크기로 확대 촬영하거나, 거대한 크기의 사물이나 풍경을 스케일감, 거리감을 가늠할 수 없게끔 원근을 없앤 이미지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 김수영
김수영(1971-)의 수직, 수평 또는 사선형의 그러데이션은 오랫동안 그의 회화적 소재였던 고층 빌딩의 외피에서 출발하였다. 한밤중 불 켜진/꺼진 빌딩 창문의 실루엣이 불러일으키는 반복적 요소와 환영은 김수영을 매료시켰다. 건물 파사드의 반복 요소를 공간지각적으로 받아들인 작가는 반복과 변주를 주요한 요소로 하는 음악에서 비슷한 속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하나의 주제가 선율, 리듬, 화성 등의 변주를 통해 반복, 확장되는 것에 주목하게 되면서 바흐의 푸가, 그중에서도
■ 김용관
김용관(1980-)의 <미메시스의 폐허들, 폐허들의 미메시스>(2019)와 <신파>(2019)는 <시계방향으로의 항해>(2018)와 함께 그의 아트픽션(AF) 삼부작이다. <미메시스의 폐허들, 폐허들의 미메시스>는 보르헤스의 소설 <원형의 폐허들>에서 착안하여, 현실이 미메시스를 모방한다는 개념을 나타낸 애니메이션이다. <신파>는 가상의 비주얼 노벨의 게임 화면을 리플레이한다는 설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며 그래픽 노블로도 발간되었다. 김용관의 작업에는 ‘무한’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무한만이 규칙을 벗어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만약 세상의 수많은 결과물들이 결코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세상을 바꾸는 시도 또한 당위적일 수 없을 것이기에 이러한 당위적 구조에 의문을 품으며 가치를 수평적으로 재배열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김용관은 역사가 수많은 임의, 우연, 무작위적 결정과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며 다른 역사와 다른 가치를 중시하는 세계에 대해서 상상하기를 시도한다.
■ 이해민선
이해민선(1977-)의 세상을 향하는 시선은 관념을 배제한 상태에서의 사물 보기를 흥미로워한다. 작가는 모든 것이 동등한 물질세계에서는 모든 존재가 각기 자기 힘을 가지고 존재한다고 말하는데, 화가로서 그는 그러한 사물을 화면으로 불러들이고 그것이 이미지인 동시에 사물이기를 기대한다. 그는 검은 장소 혹은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어떤 실체가 임시 가림막 같은 불완전한 것으로 뒤덮여 있는 그림을 그리고 <바깥>(2018)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두 점의 회화가 모두 <바깥> 시리즈인데, 그는 같은 제목의 비슷한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 이 시리즈는 반복을 통해 전형적인 스타일을 구축하기보다 작가가 대상이 바뀔 때마다 무에서 시작한다는 각오로 매번 그리는 방식부터 의심하며 출발한 작업들이다. 그는 이미지보다 생각을 더 중시한다고 말한 적 있는데, 그렇지만 그의 작업은 개념적이기보다는 철저히 물질적이고 회화적이라는 역설을 가진다. 또한 이해민선은 재료 역시 그리기의 도구로 치부하기보다는 물질로써 다룬다. 작가가 <살갗의 무게> 시리즈(2015)로 발표한 적 있는 <채석장>(2015) 작업들은 인화된 사진을 화학약품으로 녹여서 이 녹아내린 물질을 안료로 삼아 이를 붓으로 밀어내어 다시 그림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 정경빈
정경빈(1993-)에게 세계는 몸의 감각으로 지각된다. 2019년 9월 11일 정경빈은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했다. 구멍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자리, 하늘로 치솟았던 빌딩 두 채가 통째로 증발한 그곳에서 작가는 어릴 적 뉴스 화면으로 9.11 테러를 목도한 기억, 그리고 오랜 투병 생활로 인해 얻게 된 자신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오버랩되면서 마치 동일한 상실을 겪은 사람을 마주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작가는 누구나 트라우마, 몸의 얼룩을 크고 작게 가지고 있음이 당연하니, 완전히 없어지지 않으나 종종 어지럽게 밀려오는 감각과 이미지에 도리어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그에게 ‘벽’이라는 소재는 가로막힌 벽 앞에 옴짝달싹 못하는 몸으로부터 시작해 신체적 감각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캔버스는 한 사람의 몸이 감각하는 면적이자, 매일의 몸이 눕는 자리, 그리고 최후의 몸이 눕는 땅이 되기도 한다. 그의 <하얀벽> 시리즈는 속박된 신체가 벽에 이미지를 투사하는 과정을 전제한다. 이번 전시에는 신작 3점과 함께 개인전 《다리없는산책》(상업화랑, 2022)에서 소개되었던 작품들 중 <서울22> 시리즈 일부가 포함되었는데, 작품의 제목은 이미지가 촉발된 장소와 시간 등을 암시하나 그는 사진이나 영상 등의 기록을 참조하지 않고 오로지 기억을 통해 이미지를 다루며 과거에 보았던 풍경에 자신의 심상과 감각을 투사한다.
■ 정희승
정희승(1974-)은 ‘사라짐’ 또는 ‘부재’라는 개념이자 테마를 일련의 사진을 통해서 끝없이 변주하고 사색해 왔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무제>(2017)는 장미를 찍은 사진에서 장미를 오려내고 남은 여백을 촬영한 사진으로 예리하게 오려낸 실루엣은 부재에 대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 한우리
한우리(1986-)는 사라지기 직전의 세계나 사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어떻게 이미지로 구성할 것인가 고민해 왔다. 그는 특히 사운드와 영상처럼 시간적 속성을 지닌 매체를 다뤄왔는데 예전부터 16밀리 필름 영사기에 관심을 가지며 공부해 왔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투명한 감각>(2022)과 <베르팅커>(2022)는 개인전 《실과 리와인더》(보안여관, 2022)에서 이미 선보였던 작품들로써, 작가는 사라지기 직전의 찬란한 사물(16밀리 필름 영사기)과 이 사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펼쳐냈다. <투명한 감각>은 16밀리 필름을 둘러싼 환경과 조건을 사라진 친구를 기억해내기 위한 세 사람의 분투로 은유한 작품이다. 한우리는 “남겨진 세 사람은 각자 자신의 조각을 덧대고 연결해 가면서 서사를 작동시키고자 하며, 이 공동의 작업을 통해 비로소 잃어버린 것의 서사가 재연될 수 있다. 재연은 자명한 역사적 사실로서의 사물을 재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면면에 대한 공동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억을 구성 하는 행위가 된다”고 말한다. <베르팅커>는 ‘파리자리’라는 유일한 곤충 별자리가 존재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별자리가 된 사물의 삶을 은유한 작업이다. 독일 천구지도 제작자 요한 바이어가 제작한 1603년 지도 ‘우라노메트리아(Uranometria)’에는 51개의 별자리가 표기되어 있는데, 여기에 유일한 곤충 별자리인 파리자리가 등장한다. 한우리는 실제와 혼동되는 가상의 설화를 16밀리 필름과 디지털 화면을 병치하는 방식으로 제시하여 사라진 사물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한 매체의 소멸은 한 유형의 이미지의 소멸과 동일시될 수도 있지만, 적어도 한우리의 작업 안에서 이미지는 거듭되고, 결합되고, 다시 새로워진다.
전시 전경
사진: 하이트컬렉션 제공, 김경태 촬영